6개월 간 진행된 대중 인식 개선 캠페인부터 10년을 넘긴 기업 사회공헌사업까지, 트리플라잇은 그동안 다양한 프로젝트의 임팩트를 정의하고 측정해왔습니다. ‘임팩트’라는 추상적인 요소를 구체적인 결과물로 산출해내는 작업은 단 한 번도 수월한 적 없었지만, 2023년 여름에 만난 ‘우아한영향력선순환 기금 장학사업’(이하 ‘우영선 장학사업’)의 임팩트 진단 여정은 트리플라잇에게도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과업이었습니다. 1년 7개월에 걸친 이 여정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혔고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 과정에서 트리플라잇은 무엇을 배웠는지 되짚어봅니다.
우영선 장학사업은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김봉진·설보미 부부가 자산 50억 원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며 시작됐습니다. 이후 초록우산이 사업 운영을 맡고, 김봉진·설보미 부부가 복지 사업을 위해 세운 봉앤설 이니셔티브를 통해 기부자 의견이 꾸준히 사업에 반영되었는데요, 이렇게 기금 집행기관(사랑의열매)-사업 수행기관(초록우산)-기부자(봉앤설 이니셔티브)라는 '3자 거버넌스' 구조로 운영된 것도 우영선 장학사업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사업 첫 해인 2018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2006년 출생) 50명을 학교·사회복지관으로부터 추천 받아 장학생으로 선정했고,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7년 동안 지속해서 지원했습니다. 우영선 장학사업의 근간에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싶은 부모 마음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인생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이 성장의 기회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자”는 기부자의 철학이 깔려 있는데요, 이러한 철학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전례 없이 독특한 장학사업이 되어갔습니다. 공부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 배우, 요리사, 축구선수 등 장학생 각자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성과를 평가하지 않고, 장학생 당사자를 넘어 가족 구성원의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원을 병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우영선 장학사업을 거쳐간 실무자들이 입을 모아 “되게 이상한데 진짜 좋은 사업”이라 평하는 이유입니다).
장학생 각각의 꿈과 성장 환경을 고려해 맞춤식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다 보니, 7년 동안 우영선 장학사업이 만들어낸 변화 또한 장학생마다 달랐습니다. 따라서 우영선 장학사업의 임팩트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장학생 한 명, 한 명의 지난 7년 이야기를 수집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장학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줄까?" "장학생들의 청소년기에 녹아든 우영선 장학사업의 영향력을 파악하려면 무슨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까?”
그리하여 크게 두 가지를 둘러싼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①장학생들이 차근차근 과거를 반추하며 주요 경험과 깨달음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와 환경 ②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학생 스스로 우영선 장학사업의 의미와 영향력을 파악해보도록 유도하는 질문과 형식. 두 달 남짓한 고민과 논의의 시간 끝에, '인생 그래프'에서 착안한 청소년기 회고 도구와 감정 표현을 돕는 감정카드, 우영선 장학사업의 주요 프로그램·사람 카드를 개발하고 1, 2부로 구성된 ‘청소년기 회고 워크숍’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라포가 형성된 장학생 2~4명을 그룹으로 편성해 19회에 걸쳐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더 읽어보기 : 트리플라잇이 미래세대 위한 감정카드를 개발한 이유
장학생들이 워크숍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우영선 장학사업의 임팩트를 도출하는 ‘데이터’로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편의 에세이로 편집돼 사업 종료 후 장학생들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난관은 바로 이 작업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장학생 모두가 우영선 장학사업과 함께한 7년의 시간을 소중한 '성장' 경험으로 간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까?”
원래 계획은 장학생들의 이야기를 구술채록 형태로 다듬고, 여기에 과거 실무진과 진행했던 인터뷰를 비롯한 사업 기록을 보태어 원고를 완성하는 것이었지만, 장학생마다 워크숍에서 들려준 이야기의 깊이와 양이 달라서 동일한 형식으로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구술채록 형식 외에 서술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1인칭 주인공 관점의 일기 형식과 3인칭 관찰자 관점의 단편소설 형식을 도입하기로 했고, 내용의 정확성과 더불어 문학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중 부담 속에 작업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난관은 우영선 장학사업의 7년 여정과 성과를 담은 ‘임팩트 리포트’를 기획할 때 등장했습니다. “장학생들의 성장 주기와 서로 다른 환경에 맞춰 수없이 변주됐던 우영선 장학사업의 독창성과 그로 인한 임팩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는 무엇일까?”
임팩트 리포트의 핵심 목적은 사업의 임팩트가 무엇이고 얼마나 창출됐는지를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영선 장학사업의 경우, 사업이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맥락을 생략해버리면 임팩트 또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영선 장학사업의 임팩트 리포트는 사업이 만들어낸 ‘변화’의 ‘내러티브’에 초점을 맞춰 주제와 목적이 다른 세 권의 책으로 구성했습니다.
첫 번째 책 『우아한 의도, 담대한 여정』은 사업 배경과 주요 내용, 핵심 성과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일반적인 '임팩트 리포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책 『2006년생 우영선』은 연대표나 세부 프로그램 설명 텍스트만으로는 충분히(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우영선 장학사업의 7년 여정을 가상의 장학생 ‘우영선’의 청소년기로 각색한 것입니다. 우영선 장학사업과 함께한 영선이의 학창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업의 임팩트를 탐지할 수 있길, 임팩트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세 번째 책 『단순한 철학, 복잡한 교훈』은 선례 없는 장학사업을 구상하고 운영하며 기부자와 실무진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우영선 장학사업은 사업 방식뿐만 아니라 운영 구조 측면에서도 실험적이었던 만큼, 앞으로 비슷한(혹은 전혀 새로운) 복지 사업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 그리하여 ‘우아한 영향력’이 '선순환’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매뉴얼이나 가이드처럼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도록 기부자와 실무진의 코멘트를 최대한 생생하게 담는 데 주력했습니다. ☞책 3권 내려받기(PDF)
우영선 장학사업이 만들어낸 우아한 영향력을 더 널리 전파하기 위해 책 3권의 핵심 내용을 웹페이지로도 제작했습니다. 장학생 당사자들이 우연히 웹페이지에 접속해 내용을 읽어보며 ‘아, 내가 이런 취지로 진행된 사업의 장학생이었구나!’ 하고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웹페이지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둡니다). 우영선 장학사업은 트리플라잇에게도 선례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는데요, 앞으로 트리플라잇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며 세상에 임팩트를 확산하는 조직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