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빗대어 흔히 ‘사각지대’라 합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직과 협력해 문제 실태를 진단하거나 이들 활동의 임팩트를 측정하려 할 때, 트리플라잇 또한 자주 '사각지대'에 맞닥뜨리곤 합니다. 바로 ‘데이터 사각지대’인데요, 해결책의 적확성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문제 현황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거나, 목표한 임팩트가 제대로 달성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성과 데이터가 제대로 수집되지 않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사각지대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잦은데요, ‘데이터 사각지대 = 복지 사각지대’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이나 솔루션의 효과성을 객관적으로 명시할 데이터가 없어서 적절한 자원이 미치지 않고 방치된 사회 이슈, 대상 집단, 문제 상황은 안타깝게도 무수히 많습니다.

위기임신청소년도 트리플라잇이 맞닥뜨린 ‘데이터 사각지대’이자 ‘복지 사각지대’였습니다. 최근 2~3년 사이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청소년 관련 국책 연구기관 등에서  ‘위기청소년’, ‘청소년부모’ 또는 ‘한부모가족’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해왔기에 이들에 관한 데이터는 구할 수 있었지만, ‘위기임신청소년’에 특정한 실태조사 결과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21년부터 위기임신청소년 지원사업 ‘더맘(THE MOM)’을 운영해온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트리플라잇에 ‘위기임신청소년’을 주제로 이슈 리포트 작업을 의뢰한 이유도 그러했습니다. 예기치 않게 임신한 청소년이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지원을 고민하기에 앞서, 당사자들이 겪는 위기 상황과 문제의 핵심을 진단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구할 수 없는 데이터를 현장에서 직접 발굴해 데이터-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시작점이기에, 트리플라잇에게는 더없이 반갑고 가슴 뛰는 제안이었습니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정의’부터 명확하게

문제 현상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핵심 용어를 명료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임신한 청소년들을 부르는 표현은 ‘청소년미혼모’, ‘청소년 산모’, ‘고딩엄마’ 등 통일되지 않아, 대상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지원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트리플라잇과 기아대책은 임신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위기임신청소년’이라 칭하고, 청소년 권리 보장 관련 법과 위기임산부 지원 관련 법, 아동·청소년학계에서 규정하는 ‘위기’의 의미 등을 종합해 다음과 같이 위기임신청소년을 정의했습니다 :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위협을 받거나 고통스러운 상태로서, 임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이 있어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24세 이하 임산부.”

“현장에 답이 있다” ≒ “현장에 답이 되는 정보가 있다”

다음 단계는 위기임신청소년이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어떤 위협을 받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개입을 필요로 하는지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트리플라잇은 기아대책을 통해 위기임신청소년 지원기관을 운영하는 전문가 3명과 더맘사업 자문단인 위기임신청소년 당사자 2명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위기임신청소년들을 곁에서 지켜봐온 전문가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청소년이 ‘위기임신’을 겪게 되는 주요 배경과 이들이 아기와 가정을 꾸려 자립하는 데 필요한 여러 자원과 환경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출산 후 직접 아기를 키우고 있는 위기임신청소년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겪어온 개인적 위기와 사회적 차별 경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요.

이렇게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 덕분에, 기존의 위기청소년 실태조사*를 토대로 '위기임신청소년이 경험하는 위기 상황 실태조사'의 문항을 설계할 때 '위기임신'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전문가와 당사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정보인 만큼, 질문의 타당성을 높이고 답변의 모호성을 낮출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임신 전(성장기)-임신 중-출산 후(양육 중) 겪었던 환경적·경제적·사회적·신체적·심리적 위기 경험을 묻는 44개 문항(객관식 36개 문항, 주관식 8문항)으로 구성된 온라인 설문지를 완성했고, ‘24세 이전 첫 임신을 경험한 여성’ 응답자 92명으로부터 유효 답변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품었던 가설을 설문으로 검증하다

조사 결과, 청소년이 위기임신을 경험하게 되는 근본 원인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불안정한 원가정 환경’이 실제 청소년의 위기임신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응답자 92명 중 80%가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54.3%가 부모가 서로 때리거나 발로 차며 싸우는 모습을 목격하는 등 안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10명 중 8명(80.4%)은 한 번 이상 가출해본 적이 있고, 10회 이상 가출했다는 응답자도 18명(24.3%)이나 됐습니다. 가출 경험이 있는 응답자 74명 중 40명(54.1%)은 “가족과의 갈등과 폭력을 피하기 위해” 가출했다고 응답했고요. “원가정에서의 위기 경험이 예기치 않은 임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63%에 달했습니다.

실태조사 설계를 위해 만났던 위기임신청소년 당사자들이 겪은 차별이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의 문제라는 것도 이번 조사의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위기임신청소년이 출산·양육을 둘러싼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정보나 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 반드시 거치게 되는 5개 거점 기관(▲학교 ▲약국·산부인과 등 의료기관 ▲시/군/구청 ▲읍/면/동주민센터 ▲위기임산부·미혼모 지원기관) 가운데 위기임신청소년에게 가장 비친화적이라고 느꼈던 곳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과반(66.7%)이 ‘학교’를 꼽았고, 10명 중 3명이 ‘의료기관’, ‘시/군/구청’, ‘읍/면/동주민센터’ 또한 “위기임신청소년에게 친화적이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위기임신청소년을 직접 대면하며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담당 인력의 태도와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이는 지점입니다.

복지 사각지대 밝히는 출발점, ‘이슈 데이터’

현장 인터뷰, 당사자 설문조사 등으로 직접 이슈 데이터를 수집해 사회적 관심 밖에 있는 데이터-복지 사각지대를 밝히려는 시도는 트리플라잇과 기아대책 모두에게 값지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출발점도,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도 '데이터'라는 것, 그리고 이 중요한 데이터를 구할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가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니까요. 트리플라잇은 앞으로도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고자 도전하는 조직들과 협력해 데이터-복지 사각지대를 조금씩 메워나가겠습니다.

※트리플라잇이 기아대책과 함께 진행한 '위기임신청소년이 경험하는 위기 상황 실태조사'의 상세한 결과는 기아대책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슈리포트 「위기임신청소년이 경험하는 위기 상황 실태조사」 보러 가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황여정·이정민, 2020)의 「위기청소년 현황 및 실태조사 기초연구」에 수록된 ‘위기청소년 실태 예비조사’ 문항을 말함. 본 연구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위기청소년 관련 통계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소년 위기 경험 관련 실태조사 8건을 종합해 설계한 ‘위기청소년 실태 예비조사’ 문항과 여기에 대한 위기청소년 당사자 565명(유효 응답자 수)의 답변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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