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분리된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것을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이라고 합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제19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인정하며, 장애인이 사회에 통합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정부도 2021년 ‘시설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탈시설 기조의 장애인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탈시설 :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권한과 선택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사생활이 보장받으며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는 것
장애인이 시설을 떠나 자립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020년 기준 시설에 있는 장애인은 2만9,000명인데요, 이 중 98.3%가 중증장애인, 80.1%가 발달장애인으로 당장 시설을 떠나긴 어렵습니다. 시설을 퇴소한 장애인을 봐도, 과반(54%)이 직장이 없거나 직장이 있어도 시간제 근로자가 대부분(93.8%)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합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려면 제도적으로도, 역량적으로도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죠.
해외에서는 일찍이 장애인의 독립적 생활을 돕기 위한 솔루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트리플라잇은 글로벌 트렌드 분석을 통해 ▲일상생활 지원(Daily activities support) ▲역량 강화(Empowerment) ▲주거 지원(Housing support)으로 주요 솔루션을 정리해 봤습니다. 장애인들은 보호자와 연결된 플랫폼을 통해 일상 생활을 꾸려가고, 교육과 주거, 돌봄 서비스를 통해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 성인 자폐인을 위한 라이프스킬 플랫폼 ‘Nflyte’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자폐인 인구의 87%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편, 이들 중 대다수가 혼자 살고 싶어한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Nflyte는 성인 자폐인이 원격으로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어플리케이션(앱)입니다. 이용자가 앱에 아침 식사하기, 장보기 등 오늘의 할 일을 등록하면, 부모는 웹 포털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인증 사진을 앱에 업로드하면, 과업이 ‘완료’ 처리되고 성공 일지에 기록됩니다.
부모는 자녀의 과업 진행 현황을 점검하고, 버스 노선이나 장보기 리스트 등 자녀가 매일 확인해야 하는 정보를 등록하면서 자녀의 독립 생활을 원격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Nflyte의 창업자인 Stacey Ledbetter 역시 자폐인 딸의 부모로서, 딸의 성공적인 독립을 돕기 위해 이 앱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덴마크 | 24시간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앱 ‘Be My Eyes’
덴마크의 Be My Eyes는 시각 장애인과 저시력자와, 시각 정보를 제공할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글로벌 커뮤니티 앱으로, 시각장애 이용자들이 앱을 활용해 독립성과 일상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입니다.
이용자는 쇼핑할 때, 운동기구 사용법을 확인할 때 등 일상에서 시각적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봉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매칭된 봉사자는 실시간 영상 통화를 하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합니다. 전 세계 750만 명의 봉사자가 85개 이상의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이용자는 24시간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힘도 빌릴 수 있습니다. Be My Eyes에는 AI 어시스턴트(Be My AI)가 통합돼 있어서,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의 시각적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필요할 경우 채팅으로 추가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150개국 70만 명이 앱을 이용 중이고, 장애인 고객을 위한 기업 콜센터 등 솔루션도 제공된다고 해요.
호주 | 장애인을 위한 안전한 자금 관리 솔루션 SpendAble
장애를 가진 사람 2명 중 1명이 금융 사기의 피해를 당할 만큼, 장애인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금융 범죄에 취약합니다. 호주의 SpendAble은 장애인들이 안전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마트 결제 솔루션으로, 이용자가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지원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적절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용자는 예산 범위 안에서 지출 계획을 세워 이에 따라 소비하고, SpendAble의 직불카드를 사용하면서 거래 내역과 영수증, 계좌 잔액 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출 정보를 가족과 공유해 과소비를 줄이고 보다 책임감 있게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 맞춤형으로 설계된 재정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제공되는데요, 이용자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상황에 맞는 재정 관리 전략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미국 | 신경다양인을 위한 교육 플랫폼 Daivergent
Daivergent는 자폐, ADHD, 학습장애 등 신경다양인(Neurodivergent)*에 해당하는 14세 이상 청소년·성인에게 일상생활과 직업에 필요한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이용자는 ▲직업 기술(시간 관리, 가상 채용 인터뷰 등) ▲생활 기술(자기관리, 요리, 운전면허 등) ▲사회적 기술(친구 사귀기, 스트레스 관리 등)을 주제로 한 강의를 수강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힘을 키웁니다.
*신경다양인(Neurodivergent) : 자폐스펙트럼, ADHD, 난독증, 뚜렛증후군, 강박장애 등을 치료해야 할 질환이나 장애로 다룰 것이 아니라, 신경학적 차이에 따른 다양한 양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의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범주에 해당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강의 수강 뿐만 아니라 전문 코치와 매칭돼 함께 학습 계획을 세우고 관리해나가는데요, 이용자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습니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는 Daivergent를 통해 이용자들이 심화된 1:1 맞춤형 직업 탐색 및 취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국 | 돌봄형 공유주거 Shared Lives Care
영국의 사회적 기업인 Shared Lives Plus는 노인, 학습장애인, 시설퇴소 청소년 등에게 돌봄과 지원을 제공하는 Shared Lives Care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과 돌봄 제공자를 매칭해줍니다. 참여자는 돌봄 제공자의 집으로 입주해 장기간 함께 생활하거나, 하루 일정 시간 동안 돌봄 제공자의 집에 머물며 필요한 도움을 받습니다.
이용자들이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타인과 일상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소통능력과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또한 Shared Lives Care의 장점입니다. Shared Lives Plus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용자의 97%가 돌봄 제공자를 가족처럼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91%가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지난해 Shared Lives Care를 이용한 9,800명 가운데 78%는 학습장애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이들의 경우 방문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Shared Lives Care를 이용할 때 연간 약 3만 파운드(약 5,400만원)를 절약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입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 또한 상당한데요, 현재 영국에서 Shared Lives Care를 통해 주거·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약 1만 명으로, 이들은 자영업 형태로 주당 최대 650파운드(약 99만원) 수준의 수수료, 임대료, 생활 보조금 등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