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렌즈로 본 국내 임팩트 투자 현황

데이터 인사이트
2025-03-30

전반적인 경기 불황과 맞물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자 시장 자체가 위축된 상황에서 특히 여성 창업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2024년 여성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규모는 전년 대비 62% 수준에 그쳤습니다. 벤처 투자 유치 전체 규모 측면에서도 2020년 8%였던 여성 창업 기업 비중은 지난해 1.8%로 급감했습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합니다. 글로벌 컨설팅기관 EY가 독일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창업 기업에 투자된 금액은 2023년 대비 58% 감소했는데요, 이는 남성 창업 기업들의 투자 유치액 규모가 2023년 대비 25% 증가한 것과 대조됩니다. 벤처 투자 데이터 플랫폼 피치북(Pitch Book)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2024년 상반기 창업 멤버에 여성이 포함된 기업의 투자 유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2.5%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여성이 단독 창업하거나 여성들이 공동 창업한 기업의 상황은 더욱 열악합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100% 여성 창업 기업의 투자 유치 규모는 2014년 이래 전체의 2% 수준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임팩트 투자 시장 상황은 어떨까요?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은 2017년 '젠더 렌즈 투자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투자 시장의 성별 격차(gender gap)를 좁히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젠더 렌즈'라는 개념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풍벤처스가 2018년 <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발행하며 젠더 관점의 투자 결정 프로세스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엠와이소셜컴퍼니는 2024년 임팩트 리포트에서 '여성기업 투자 4D 메커니즘'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젠더 렌즈가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트리플라잇이 주요 임팩트 투자사 8개 기관*의 포트폴리오(피투자사) 가운데 여성이 창업한 기업(공동 창업 포함)은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봤습니다.

*지난 5년(2018~2023) 간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임팩트’ 분야와 한국벤처투자의 ‘소셜임팩트’·’사회적기업’·’사회서비스’ 분야 출자사업으로 펀드를 결성한 투자사 중 ‘임팩트 투자 전문’을 표방한 8개 기관(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아크임팩트자산운용, 소풍벤처스, 에이치지이니셔티브, 엠와이소셜컴퍼니, 인비저닝파트너스, 임팩트스퀘어,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의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는(2025년 3월 말 기준)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이며, 투자 상태가 '진행(current)'인 곳과 '종결/회수(exit)'인 곳이 섞여 있음. 분석 대상 피투자사는 국내·해외 기업 종합·중복 카운팅 포함 487개사임

여성 입지 좁은 국내 투자 시장, 임팩트 투자 섹터는?

트리플라잇이 국내 주요 임팩트 투자사 8개 기관이 투자한 국내·해외 기업 487곳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창업한 기업은 93곳으로 전체의 19.1%였습니다(중복 카운팅 포함). 8개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기업 5곳 중 1곳이 여성 창업 기업인 셈입니다. 8개 기관 중 포트폴리오의 여성 창업 기업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인비저닝파트너스로, 투자 기업 3곳 중 1곳(31.3%) 수준이었습니다. 엠와이소셜컴퍼니(24.5%)와 임팩트스퀘어(24.4%)도 포트폴리오의 4분의1가량이 여성 창업 기업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8개 기관이 투자한 기업 487곳 중 해외 기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 429곳 중 여성 창업 기업의 비중도 19.1%(82곳)이었는데요, 2022~2024년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 전체에서 여성 창업 기업 비중이 줄곧 한 자릿수(2022년 8%, 2024년 1.8%)에 머무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임팩트 투자 시장의 성별 격차가 비교적 적은 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8개 기관의 임팩트 투자를 유치한 여성 창업 기업 중 가장 많은 12.6%가 '음식/외식**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외식 관련 사업 중에서도 지구인컴퍼니(창업자 : 민금채), 아머드 프레시(오경아)처럼 건강과 환경을 고려해 육류를 대체할 식물성 단백질 원료·식품을 개발하거나, 웰피쉬(정여울), 이쁜꽃(양유미)처럼 로컬 식재료나 스토리를 중심으로 가공식품·음료를 제조하는 기업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콘텐츠'(11.5%)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 창업 기업이 많았습니다. 뉴닉(김소연)처럼 기존 언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나 널위한문화예술(이지현·오대우), 플리옥션(이연주)처럼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입니다.

‘교육’(9.2%)’ 또한 많은 여성 창업 기업이 종사하는 분야로 꼽혔는데요, 아동·청소년의 교육 접근성을 높이는 학습용 앱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기업가 정신’ 함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오이씨랩(장영화)이나 학원이나 강사 리뷰를 공유·열람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그레인스타인그룹(황지은)처럼 교육의 다양성과 질을 높이는 솔루션 기업들도 눈에 띕니다.

한편, 8개 기관이 투자한 국내·해외 기업 487곳의 사업 분야를 분석한 결과는 조금 달랐는데요, 가장 많은 기업이 종사하는 상위 3개 분야는 '환경/에너지'(15.6%), '음식/외식'(11.6%), '바이오/의료'(11.1%) 순이었습니다. 이 중 음식/외식 분야를 제외한 환경/에너지, 바이오/의료 분야의 경우, 여성 창업 기업들의 종사 비중은 전체 기업 대비 절반 수준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동 교육·돌봄 사업을 포함하는 '유아' 분야나 '패션', '뷰티' 분야의 경우 여성 창업 기업 비중이 전체 기업 대비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업 분야 분류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 플랫폼 ‘the VC’의 ‘분야’를 참고함

주요 임팩트 투자사 8개 기관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 487곳 가운데 2개 이상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국내 기업은 32곳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여성 창업 기업은 5곳(15.6%)으로, 폐업한 1곳을 제외하면 ▲에누마(이수인·이건호) ▲커넥팅더닷츠(김희정) ▲테코플러스(유수연) ▲리플라(서동은) 등입니다. 에누마는 아이들이 자신의 학습 수준과 속도에 맞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기초 학습 앱 ‘토도’ 시리즈를 출시했으며, 커넥팅더닷츠는 유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부모님과 돌봄 교사를 연결하는 매칭 앱 ‘재깍악어’와 오프라인 돌봄 공간 ‘째깍섬’을 운영합니다. 테코플러스는 코코넛 껍질 등 버려지는 천연 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재생 플라스틱 원료와 제품을 생산하며, 리플라는 미생물 기반 선택적 재질 분해 기술을 활용해 순도 높은 재생 플라스틱 생산 설비를 개발합니다.

성평등한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향하여

지난해 GIIN이 전 세계 39개국의 투자기관 305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참여 기관의 23%가 “자금 일부를 젠더 렌즈를 반영한 투자에 집행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27%는 “모든 투자 결정 과정에 젠더 렌즈를 도입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참여 기관의 절반(50%)이 젠더 형평성을 고려해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는 건데요, 반대로 말하면 두 곳 중 한 곳은 투자 결정 과정에서 젠더에 따른 자금 접근성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GIIN, <In Focus : Gender and Impact Investing in 2024>). 트리플라잇이 공개된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국내 임팩트 투자사 8개 기관 중에서도 자사 웹사이트나 최근 임팩트 리포트 등에서 ‘젠더 관점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음을 명시한 곳은 한 곳뿐이었습니다(물론 별도로 명시하지 않고서 젠더 관점의 투자 원칙을 준수하는 기관들도 있을 겁니다). 여전히 전 세계 여성 창업자들은 투자 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고 있는 만큼,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더욱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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