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린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ESG 열풍 속에서 친환경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기업은 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에코', '친환경', '100% 재활용' 등 용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 그린워싱 광고에 적극 대응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등 5개국 소비자 865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YouGov의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패션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친환경' 표현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영국, 미국, 유럽 등 국가 차원에서도 그린워싱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똑똑한 소비자라면, 그린워싱을 어떻게 판별하고 대응해야 할까요? 2022년 상반기, 그린워싱이 중심이 된 화제의 현장 5곳을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2월, 런던 패션위크 현장. 거리 곳곳에 세탁기 모형이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환경단체 CMF(Change Markets Foundation)의 활동가들은 세탁기를 형상화 한 커다란 종이박스를 온몸에 두르고, 패션 브랜드의 그린워싱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유명 브랜드들의 진실을 알리는 '그린워시닷컴(Greenwash.com)' 웹사이트를 패션위크에 참석한 관계자와 대중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린워시닷컴은 유명 브랜드의 이름만 클릭하면, 제품별 그린워싱 현황과 이유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홈페이지입니다. 브랜드별, 산업별 또는 랜덤으로 그린워싱 브랜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빠르게 돌아가는 세탁기 영상이 입체적으로 등장합니다. 기업이 다양한 형태의 제품 광고로 브랜드를 세탁(Wash)하는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를 선택하면 그린워싱으로 선정된 3가지 상품이 나타납니다. 그 중에 Stan Smith 운동화를 클릭해봤습니다. 해당 운동화 광고 사진이 곧바로 나타납니다. 이 운동화는 'END PLASTIC WASTE'라는 슬로건과 함께 '플라스틱을 50% 재활용'한 상품으로 홍보 되고 있는데요. 그린워시닷컴은 "플라스틱은 한 번 섬유로 바꾸면 더이상 재활용 할 수 없기 때문에 매립 또는 소각해야 하지만, 병으로 남아있으면 여러 번 재활용이 가능하다"면서 "플라스틱 병을 신발로 바꾸는 것 자체가 잘못된 해결책"이라고 꼬집습니다. 그린워시닷컴에는 아디다스·코카콜라·구찌·H&M·이케아·나이키·루이비통·프라다 등 총 86개 기업의 그린워싱 내역이 담겨있습니다.
" FIFA 역사상 최초의 탄소중립 월드컵을 개최하겠다."
지난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공식 선언한 내용입니다. 2022년 11~12월 진행되는 FIFA 월드컵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카타르에서 개최됩니다. 조직위는 "온실가스 포집 프로젝트에 투자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지만, 기후운동가들은 조직위의 홍보가 "그린워싱"이라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국제환경단체 '탄소시장감시(CMW)'의 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 기간 외에 경기장의 전체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은 조직위가 추산한 양보다 8배 많은 140만톤에 달합니다. 조직위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들이 수도인 도하로부터 50km 이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 없어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머무는 숙소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일일 168회 비행기편이 제공됩니다. CMW의 질 뒤프랑은 "일반 대중과 팬들에게 월드컵이 기후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환경영향에 대해 보다 투명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영국은 그린워싱 광고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2020년 유명 브랜드의 그린워싱 현황을 조사한 영국의 경쟁시장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이하 CMA)은 조사 대상 기업의 광고 중 약 40%가 거짓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BMW와 Shell의 광고는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금지 조치를 받았습니다. 또한 CMA는 50년 이상 광고 표준을 관리해온 광고표준협의체(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이하 ASA)와 파트너십을 맺고, 그린워싱 광고를 감시하며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ASA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그린워싱 광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2021년 3월부터 2022년 사이에 금지된 16개 광고 중 11개가 그린워싱 광고로, 전년 대비 3배에 달합니다. ASA는 매주 수요일,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 광고 리스트를 업로드 하고 있습니다. 해당 광고가 어떤 규칙을 어겼는지, ASA의 고발에 대한 기업의 대응과 철회 과정 전반의 기록이 공개됩니다. ASA에는 소비자로부터 연간 3만건 이상의 그린워싱 관련 고발이 접수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유럽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온실가스 배출량 항공사"라고 광고했으나, ASA는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며 광고를 금지했습니다. 유럽에서 아몬드·귀리 우유로 유명한 '오틀리(Oatly)' 역시 "우유에 비해 73%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광고했으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기업들의 그린워싱 광고가 지속됨에 따라, CMA는 그린워싱을 판별할 수 있는 소비자 행동 강령을 발표했습니다. '슬로건이나 모호한 용어는 믿지 않기',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 찾기', '포장과 제품의 폐기 방법을 생각해보기' 등 5가지 팁이 담겨있습니다.
지난 6월, 독일 검찰은 거대 자산운용사 DWS와 대주주인 도이치뱅크 본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이들에겐 사기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일반 펀드를 ESG 펀드로 과장하여 투자자를 오도한 것에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DWS의 최고 경영자인 아소카 뵈르만(Asoka Böhrmann)은 논란이 지속되자 결국 사임을 했습니다. 지난 5월, 영국에서는 HSBC의 글로벌 책임투자자 스튜어트 커크(Stuart Kirk)가 "글로벌 기관과 정책 입안자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정적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바로 다음 주에 직무 정지 처분을 받고 끝내 사임 했습니다. 그린워싱에 대한 책임이 경영진과 리더십을 향하는 모습입니다.
유럽 차원에서도 금융 시장 전반의 그린워싱을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올해 초, 유럽증권시장청(European Securities and Markets Authority)은 "투자자들에게 금융 상품의 친환경성을 과장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Sustainable, ESG, Green 등의 용어를 펀드 문서에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그린워싱을 식별할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SEC는 "일부 펀드의 경우 광고와 다르게 ESG 점수가 낮은 기업이 포트폴리오에 담겨있다"면서 "투자자들에게 ESG 펀드 운영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통하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앞으로 패션 브랜드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지난 3월 EU는 의류 산업, 특히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을 향한 강력한 규제를 예고했습니다. 의류 산업으로 인해 폐기되는 섬유가 연간 9200만 톤에 달합니다. 2024년 시행될 EU의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은 의류 산업 전과정에 연결돼있습니다. 해당 규정에 의하면 각 브랜드들은 내구성, 재사용성 등 필수 재활용 섬유 함량에 대한 표준을 명시해야 합니다. 의류 라벨에 수선 가능성 등 관련 데이터를 표기해야 하고,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도 보고해야 합니다. 이는 의류 산업의 주요 공급망인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뉴욕에선 올해 4월, '지속가능한 패션과 사회적책임법(The Fashion Sustainability ans Social Accountability Act, 이하 Fashion Act)'이 발의 됐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패션 브랜드는 원자재 생산부터 제조, 배송 등 전과정에 걸친 사회·환경적 영향을 측정 및 관리하고 관련 보고서를 공개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임팩트는 법 제정 후 18개월 이내에 공시해야 합니다. 해당 규정을 어길 경우 3개월 구제 기간을 준 뒤, 기한 내 수행되지 않으면 매출액의 최대 2%까지 벌금이 부과됩니다. 이는 본사 소재지와 상관 없이 뉴욕에서 영업을 하는 연 매출 1억 달러 이상의 의류 및 신발 브랜드에 적용됩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뉴욕주는 대형 패션 브랜드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최초 사례가 됩니다.
트리플라잇도 그린워싱, 임팩트워싱, ESG워싱 등 이해관계자를 호도하는 커뮤니케이션 리스크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혹은 'ESG' 라는 단어를 앞세워 홍보하는 것에는 중점을 두고, 부정적인 임팩트는 감추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리플라잇이 산업군별 상위 30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인 임팩트 데이터에 비해 이를 개선하는 과정을 본문에 언급하는 비중은 겨우 1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워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100% 친환경적인 비즈니스를 선망하지만, 이 목표가 결코 단시간에 쉽게 실현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진심으로 높이고 싶다면, 비즈니스가 미치는 부정적인 임팩트를 관리하며, 이를 개선하는 과정 및 결과를 구체적으로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강력해지는 그린워싱 규제, 날카로워지는 소비자의 시선... 글로벌 현장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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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 도움 : 박윤아(Leah) 트리플라잇 Manager